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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빚 : 매일의 결심(질문, 대답, 부가설명)0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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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3-09 23:35 조회1,9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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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41분

 

● 연구 범위 : 시 37:21, 마 4:3~10, 마 6:33, 신 28:12, 잠 13:11, 잠 21:5, 고후 4:18

 

● 기억절 :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7~8).

 

때로 그대에게 기꺼이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그대를 돕고 싶은 순수한 동기에서 그렇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그런 마음으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으로 돈을 빌려 준다.

우리는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집이나 차를 구입한다든지, 교회를 짓는다든지, 학비를 구한다든지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돈을 빌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최대한 현명하게, 빠른 시일 내에 갚을 계획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없는 돈을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보화를 사랑하는 정신에 지배되고 구원과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는 관문이다(초기문집, 267 참고).

우리는 기술과 재능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래야 삶을 통제하고 빚을 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빚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을 살펴보려고 한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청지기에게 있어서는 안 될 불필요한 채무가 발생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2. 느끼기 :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투자하며 빚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정서적인 해방을 경험한다.

3. 행하기 : 재정적인 부담과 정서적인 압박을 피하기 위해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산정한다.

 

➋ 불가피한 빚을 포함해서 가급적 빚을 지지 말아야 하는 영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빚지면 빚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봉사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➌ 에서와 야곱의 팥죽 사건은 순간적인 욕망과 만족에 대한 통제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줍니까?

※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영원을 잃어버리는 위험이 있다. 

➍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생활의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딤전 6:8)

※ 지족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한다. 

➎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안전한 저축과 투자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결론 : 채무가 없이 사는 신자들은 재정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하나의 훌륭한 소득입니다. 재정과 물질적인 자원을 현명하게 관리하고 싶다면 우리는 올바른 투자와 저축을 실천해야 합니다.

 

 

3월 11일(일) 차용과 소비

 

엘리사와 선지자 생도들이 요단강변에 가서 나무를 벨 때에 한 사람의 “쇠도끼가 물에 떨어”지자 그는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왕하 6:5)라고 했다. ‘빌리다’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어떤 것을 허락을 받고 사용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허락에는 위험과 책임이 따른다. 빌린 돈도 빌린 도끼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남용될 때에 더 심각한 결과가 따른다.

돈을 빌리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을 쓰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갚을 능력이 있고 미래에 금융 위기가 없으리라는 전제하에서 재정적인 위험 부담을 짊어진다. 그러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전 8:7). 따라서 돈을 빌리는 데는 항상 위험 부담이 따른다.

 

1. 아래의 말씀들은 빚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시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전 5: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신 28:44~45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답: 가능한 한 빚지지 말라고 주신 말씀이다. 도리어 그저 줄 수 있는 삶을 살라고 하시낟. 

 

우리는 지혜롭게 사용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돈을 빌리지만 소유한 돈뿐 아니라 빌린 돈을 쓰고 싶은 유혹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물론 빌려온 돈을 쓰면 대부분 형편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살 수 있다. 빌려서 쓰고자 하는 유혹은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소비문화의 핵심적인 정서이다. 그러한 유혹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을 바라야 한다(고전 10:13). 왜냐하면 차용은 저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신 28:43~45).

돈을 빌리는 나쁜 습관을 들이지 말라. 그대에게 이미 채무가 있다면 가능한 빨리 상환하라. 우리는 현명하게 소비할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재물의 주인이 되어야지 돈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돈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도 매우 신중해야 하며 최대한 빨리 갚으려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부가설명> 바울을 자신을 복음의 빚진 자라고 했다.(롬1:14,15) 바울은 또 사랑의 빚 외에는 빚지지 말라고 권고했다.(롬13:8) 돈의 빚을 지며 갚아야한다. 당연히 갚아야한다. 그런데 이자를 붙여서 갚아야한다. 갚을 능력이 없으면 파산하고 신용불량자가 된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거저주시는 하나님께 꾸어야 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빚을 낼 수밖에 없다면 신속히 갚을 계획을 확실히 세워야 할 것이다. 빌린 자와 빌려준 자가 다 만족할 수 있도록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분수에 알맞은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자기 처지를 잘 생각해서 자기를 과대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바울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하면서 이 권고를 하였다. 빚지는 것은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리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몸 자체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여(고전6:19,20)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데 지장되는 것은 결코 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돈을 빌리는 데는 큰 위험 부담이 따른다. 우리는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불가피한 채무는 최대한 빨리 상환해야 한다.

 

 

3월 12일(월) 청지기 직분과 순간적인 만족감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 25:34).

 

에서는 자신의 열정을 따르는 거친 들사람이었다. 동생이 끓이는 죽 냄새를 맡고 그는 바로 그 팥죽을 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굶어 죽을 것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단지 감정과 기분에 이끌려 그는 순간적인 압박이 이성을 억누르도록 허용함으로써 자신의 장자권을 순간적인 만족과 맞바꿨다. 나중에 그가 장자권을 돌려받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구하”(히 12:17)였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예수님은 반대 사례이다. 40일 동안 금식하며 주리신 후에 예수님은 사탄에게 세 차례 시험을 받으셨다(마 4:3~10).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유혹들의 본질을 간파하셨다. 신체적으로 연약해진 상황에서도 일시적인 만족감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생애는 죄악의 쾌락과 만족을 거부하는 삶이었다. 그분은 그런 삶을 통해서 우리도 죄를 이길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자신의 장자권을 맞바꾸거나 잃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그분과 공동 상속자가 되도록 초대하신다(롬 8:17, 딛 3:7). 우리는 시험이 올 때에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본을 따름으로 장자권을 지켜야 한다(고전 10:13).

 

1. 다음의 성경절에 따르면 순간적인 만족감에 잠재되어 있는 위험성은 무엇인가?(삼하 11:2~4, 창 3:6, 빌 3:19, 요일 2:16, 롬 8:8)

[삼하11:2~4]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3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4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답: 육신의 욕망에 빠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땅에 속한 사람으로 멸망하게 된다. 

 

순간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욕망은 통제를 상실한 정신 상태의 징후이다. 그것은 장기적인 목표 의식을 약화시키고, 책임감을 조롱하며 손상시키는 인내심의 적이다. 만족감의 지연은 학습된 신념이다. 그것은 상황과 압박 그리고 지혜롭지 못하게 돈을 차용하는 것과 같이 세상이 주는 유혹을 관리하는 생활의 기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순간적인 보상, 미봉책, 일확천금의 탐닉 위에 건설된 세상에서는 인기가 없다.

한번 순간적인 만족을 경험하면 단기적인 보상을 반복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을 관리하는 청지기들은 그러한 덫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감성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에게 감성의 즐거움을 주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감성적 즐거움을 기뻐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생명의 작용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실과들이 열리는 나무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좋은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정서가 풍성하게 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떠나자마자 그 정서는 사망적 쾌락으로 변질되었다. 지금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쾌락을 찾는 것은 사망이 작용하는 정서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안에서 거듭나면 우리의 정서가 생명적이 되어야 한다. 어떤 충동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참된 생명작용으로 일어나야 한고 그 즐거움은 예수님의 즐거움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명의 상태가 우리 것이라면 충동적 빚을 지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즐거움을 기뻐할 것이다. 진정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자라야 이런 경험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0,11)

 

교훈 :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들을 잘 관리하려면 순간적인 쾌락과 만족을 권하는 세상의 유혹을 거부하고 일시적인 욕망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3월 13일(화) 수입에 맞는 생활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잠 21:20).

 

위의 말씀은 경제적인 책임을 다하는 청지기 직분과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경영을 대조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들의 수입에 맞게 살아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뿐 아니라 빌린 돈까지 탕진하며 재정적인 지혜 또는 검소한 생활은 마지못해 먹는 식사와 같이 고달픈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처럼 돈을 빌릴 필요가 있을 때에도 우리는 신중을 기하며 우리의 수입 내에서 살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한 자들은 그들의 재산으로부터 얻는 수입에 맞게 살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항상 그들의 재산과 그것을 지킬 방법에 대해 염려한다는 것이다. 반면 재산이 거의 없는 자들은 카드빚을 갚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재산이 아닌 생활을 유지할 길을 염려한다. 성경은 우리의 소유가 얼마든지 각자의 수입에 맞게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바울은 우리가 극단적인 단순함으로 간주할 만한 생활을 추천한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그는 지상의 소유물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빌 1:21).

 

1. 다른 것 이전에 먼저 기억해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마 6:33)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답: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받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수입을 수입이라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관리할 책임이 있는 자원으로 여겨야 한다. 예산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때 사용해야 할 수단이다. 예산 수립은 심도 있게 학습해야 할 기술이다. 균형 잡힌 재무 계획을 운영하는 데 성공하려면 숙련된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잠 14:15).

우리가 재정적인 청지기 계획에 성공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당황스러운 재정적인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에게 돈 관리의 문제가 있다면 예산을 세우라. 복잡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단순히 몇 개월 동안의 총 지출을 합한 다음, 평균을 내서 한달 생활비가 얼마인지 계산하라. 비결은 어떤 경우에도 수입에 맞게 살면서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이 즐겁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빚을 내어 탕진하는 것이 된다면 죄를 짓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살 곳은 이 세상이 아니다. 일시적인 쾌락을 따르다가 영원한 생명을 잃는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삶이 있겠는가? 에서가 그런 삶을 택했다. 야곱은 에서와의 관계로 인해서 고생길을 걸었으나 그는 영생을 얻능 기쁨으로 일생을 보냈다. 이 세상에서 괴롭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아는 삶이 된다면 그 신앙생활 철학이 즐거움이 될 것이다. 기쁨, 즐거움 등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이 반듯이 내게도 즐거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그분에게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성경은 계시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고행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신 은사를 따라 믿음의 분량대로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시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도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기쁨이 충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우리는 수입에 맞게 생활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지출 예산을 세워서 가급적 단순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3월 14일(수) 빚을 거부함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신 28:12).

 

1. 위의 말씀을 읽어 보라. 빚에 대해서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작용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답: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여 그분의 뜻을 실천할 때 빚지는 일을 피하고 오리혀 꾸어줄 수 있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가능하면 빚을 지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다른 사람의 채무에 대해서도 보증을 서지 말라고 권면한다(잠 17:18, 22:26). 빚은 미래를 당겨쓰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재정적으로 취약한 우리의 처지로부터 그 요구들에 굴복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축소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운 달콤한 묘약과 같은 것이다. 빚이 꼭 부도덕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영적인 삶을 강화시키지는 않는다.

“절약을 엄격히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거운 빚을 지게 될 것이다. 한도를 넘지 말라. 빚지는 것을 문둥병을 피하듯이 피하라”(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272).

빚은 우리를 “채주의 종이 되”(잠 22:7)게 하는 경제적인 올가미가 될 수 있다. 빚이 우리의 경제 구조에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모든 국가가 빚 위에 존재하는데 개인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주의 도우심을 믿고 그대의 빚을 갚겠다고 하나님과 엄숙한 언약을 맺고 그 후에는 그대가 오트밀 죽과 빵만 먹고 살지언정 아무에게도 아무 빚을 지지 마십시오. 여분으로 남겨 둔 25센트를 가지고 그대의 식탁을 준비하는 일은 매우 쉬울 것입니다. 동전을 잘 모으면 그것은 큰 돈이 되어 자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이것저것 사기 위해 여기저기서 잔돈을 꺼내 주고 하다 보면 곧 큰돈이 없어지게 됩니다. 최소한 그대가 빚이 있는 동안은 극기하십시오”(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257).

빚은 그리스도인들이 서기에는 연약한 기반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해를 끼치고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할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신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울 능력을 우리에게서 빼앗고, 하나님의 복을 누릴 기회를 훔쳐 간다.

 

<부가설명>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 안에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원칙이 들어있다. 자나 깨나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 말씀 위에 기초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재정적으로 빚지지 않고 살도록 계획하고 그렇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일용할 양식을 취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것이 최대의 즐거움이 되도록 마음의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그것이 최대의 즐거움이 되도록 생활하라는 것이 성경의 권고이다. 이 원칙에서 벗어나면 루시퍼의 유혹의 땅에 발을 딛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단호히 빚지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필요불가결한 경우에 빚을 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갚도록 해야 한다. 빚은 사람의 생활을 담보잡고 그를 노예로 삼는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빚은 누리자. 성도들 사이에 있는 사랑의 빚은 감사하자.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유익이 된다.(딤전6:6) 이 유익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만족하게 살도록 하자. 

 

교훈 : 빚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약화시키고,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다. 우리는 빚을 멀리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빚에 대해 보증을 서는 일도 삼가야 한다.

 

 

3월 15일(목) 저축과 투자

 

개미들은 겨울을 대비하여 양식을 저장하기 위해 일한다(잠 6:6~8). 우리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돈을 정기적으로 저축할 때 그들의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하다. 저축은 우리의 생활비나 필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요점이다. 그것은 낭비나 재물을 쌓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돈 관리에는 지혜와 예산 수립, 절제가 요구된다. 자신을 위해 저축하는 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의 전부라면 우리는 청지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빼돌리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이 사용된 돈은 이중의 손실과 같다. 돈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잠재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따로 두었다면 이 땅에서는 저축을 통해서, 하늘에서는 나눔을 통해서 증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축은 돈을 다스릴 권위를 계발하는 훈련과 같다. 우리의 기분이 가는 곳으로 돈이 우리를 데리고 가도록 용납하는 대신에 우리가 통제력을 쥐는 것이다.”—Randy C. Alcorn, Money, Possessions and Eternity (Carol Stream: Illinois, Tyndale House Publishers, 2003), p. 328.

 

1. 잠 13:11, 21:5, 13:18을 읽어 보라. 재정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요긴한 어떤 실질적인 조언이 여기에 있는가?

[잠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잠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잠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답: 재물을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훈계를 따라 얻어야 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청지기들은 하나님의 자산을 관리하는 동안 가족의 필요를 위해 저축하고 하늘을 위해 투자한다. 그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대의 재정 상황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성경의 가르침에 맞는 운영 계획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가족의 필요를 위한 저축은 현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손실을 최소화 하려면 위기를 분산시키라(전 11:1~2). 성공적인 저축을 위해서는 그대의 필요에 앞서 손실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 선행되어야 한다(잠 24:27). 그다음 전문적인 조언을 구하라(잠 15:22).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고 재산이 증가할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8:18)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청지기에게 가장 안전한 투자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이다(마 13:44). 거기에는 불황, 위기, 도둑, 경기침체가 없다. 그것은 낡지 않는 지갑을 갖는 것과 같다(눅 12:33).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계좌를 개설하는 것과 같고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와 헌금은 예치금과 같다. 다시 말해서 청구서 처리와 같이 이 세상에서 돌보아야 할 일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우리는 항상 영원한 진리에 우리의 초점을 고정시켜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부가설명> 저축과 투자에 대하여서는 경험이 있고 또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것은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잠언 13장 21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훈계를 기쁘게 따르고 전문가의 조언을 합당하게 활용한다면 저축과 투자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 저축하라고 하셨다.(마6:19~21) 온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권고를 실제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물론 여기 모든 것을 물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해하면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 여기 말한 모든 것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우선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재물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방해되면 재물을 주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잘 살다가 하늘을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이 땅에서 고생할지라도 하늘을 얻는 것을 원하신다. 거기는 영생이 있고 모든 부요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잃지 않도록 생활하자.

 

교훈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원을 관리하는 방법 중에는 지상의 필요를 위하여 손실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저축과 하늘나라에 대한 투자가 포함된다.

 

 

3월 1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타고난 재능과 기술 또는 은사는 그것이 선천적이든지 환경에 따른 영향과 교육에 의한 것이든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우리에게 있는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청지기들이 교육과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들의 기술과 재능에 통달하기를 바라신다(전 10:10).

브살렐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였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출 35:31)였다. 그와 오홀리압은 그들의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재능도 있었다(출 35:34).

우리는 더 나은 청지기가 되는 법을 배우고 특별히 물질주의 세상에 사는 동안 빚을 없애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독서, 세미나, 정규 교육 그리고 연습을 통해서 우리의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적인 성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최선의 것을 드리는 훌륭한 청지기가 될 수 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각 사람은 “그 재능대로”(마 25:15) 달란트를 받았다. 두 명의 종은 달란트를 두 배로 증식시켰지만 셋째 종은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재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달란트를 묻어 놓으면 어떤 재능이나 기술도 나타낼 수 없다. 재무 관리, 채무 상환, 극기심 배양, 실질적인 경험은 하나님이 복되게 하신 역량을 발전시킨다. 무엇이든지 성공하고 숙달하려면, 그것을 계속 반복하여 연습해야 한다.

“성경의 교훈이 매일의 생애 속에 역사할 때에, 그것은 품성에 깊고 영속적인 감화를 끼치게 된다. 디모데는 이 교훈을 배우고 실행하였다. 그는 특출한 재간이 없었지만, 그의 사업은 귀중하였다. 그가 하늘이 준 능력을 주님의 사업에 사용했기 때문이다”(사도행적, 20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절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중요합니다. 특히 재정적인 면에서 절제하지 못하면 큰 곤란과 파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 성경과 증언의 말씀을 따라 사랑의 권고를 하여 재정관리 지혜를 얻도록 도우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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